임배우의 작업실

나에게 있어 추억편지 속 선생님은 어떤의미일까?

기억의 퍼즐조각을 맞추다보면 기억나는 몇명의 선생님들이 있지만, 추억편지 속에는 두 선생님들과 주고받은 편지들만이 남아있다. 호기심 가득하던 꼬꼬맹이 숙녀의 수줍은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던 공부방 선생님.


꼬꼬맹이 국민학교 시절(국민학교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면 80년대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일것이다.)

사진에 보이듯이 '대전직할시' 다. 엄청 옛날 사람인거 같은 느낌은 나도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이겠지.


그때 당시, 우리집은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딸넷에 아들 하나인 집안의 셋째딸로 태어난다는 것은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필수 교육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사고없이 잘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는 것을 성인이 된 이후에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시절에는 다른친구들이 가는 학원을 나는 갈수없음에 서러움을 가슴깊이 꾹꾹누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어렴풋이나마 남아있다. 그래서 였을까? 저학년때는 친구들과 학교를 놀이터를 공터를 뛰어다니며 사내아이처럼 뛰어 놀았었고, 고학년에 접어들어 아파트단지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학원을 다닐 수 없던 형편이었던 나는 단지내 복지관에서 무료로 운영되는 공부방을 찾아가 배움에 대한 갈급함를 채웠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공부방을 열심히 다녔던 가장 큰 이유는 공부라기보다는 잘생긴 청년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 때문이었으리라.


호기심많은 아이의 눈에 비친 키다리아저씨같은 선생님은 지식적인 부분은 물론 나의 정서적인 부분이나 인성적인 부분도 보듬어 주었다. 짧은 만남이후 군대에 간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자발적으로 보낸 편지로 시작되어 주고받은 몇 통의 편지 속에는 선생님의 첫제자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담겨있다. 지금에와서 다시금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니 선생님이 참 괜찮은 사람이였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어린시절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나또한 이런 부분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쯤 선생님은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고 있을까? 내마음 속 그때 선생님의 멋진 모습 그대로일까? 아니면 상상과 다르게 머리가 희끗하고 배나온 중년의 아저씨 모습일까? 달콤한 상상에 잠시 젖어든다. 

추억은 추억으로 간직할때 아름다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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