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배우의 작업실

국제연극연구소 H.U.E 10번째 정기공연 연극 <고린내>를 보고왔다.

포스터를 봤을때 인상깊게 봤던지라 보고싶었던 공연이기도 했고, 지난 대흥동사랑방 워크샵때 박준우연출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연극 <고린내>의 연출을 어떻게 풀어내셨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빨갛고 어두운 조명아래, 시작 전인데도 히빠리 언니들이 쩜백 화투를 치며 보여지는 무대가 조금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공연시간이 5분 늦춰졌는데, 언니들 5분더 화투 쳐야한다며 힘들겠다며~ 같이간 일행과 소곤소곤~. 시작 전부터 기대가 된다.


시놉시스

'가장 아픈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핀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몸뚱이로 장사하는 히빠리 골목 사람들 이야기

아가씨 장사를 하면서도 자긴 히빠리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포주 한해숙.

끌어오는 손님 보다 벌금을 더 받는다는 면박에 직접 박카스를 팔러 나가는 환갑의 펨푸 정아수.

하나 있는 자식 앞에 몸 파는 꼴을 보이고도 계속 장사를 해나가는 이경하.

지금은 히빠리 에이스지만 세월 앞에 점점 정아수나 이경하처럼 늙게 될 김미주.

겨우 히빠리 골목을 떠나나 싶더니 아예 세상을 떠나버린 김숙이. 그리고.

아가씨들에게 약 팔던 시절을 몸 팔지 않은 것으로 스스로 대견해 하며 살았지만, 결국 박카스라도 팔게 되는 최연히.


위태위태한 각자의 삶을 어떻게든 붙잡고 살아가는 그들.

재개발 바람이 불어닥쳐 삶의 터전이 위태로워진 골목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기대 살아간다.

고린내 풍기는 골목에서 그 고린내 속에 몸을 던져가며 그래도 살아간다.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꿈도 희망도 시들어버린 자기 인생을 어떻게든 살려내려 애쓰는 그들에게서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축복이 될 수 있음을.


삶의 그 지독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연출의 글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한 번쯤은 되묻게 되는 말이다. 정말 귀천이 없을까? 연극 <고린내>는 창녀들의 이야기이다. '창녀', 천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다시 묻자면 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직업이 그들을 가리지만 않는다면 귀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 연극 속 히빠리 창녀들은 고린내를 벗겨내면 누구 하나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귀한 사람들이고 모두가 따뜻한 사람들이다. 처절한 삶을 살아본 사람들이고, 제대로 살아본 적은 없어도 어떻게든 살면 살아진다는 것만큼은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다.

고린내 난다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고린내 안 나는 놈 없다' 하나로 삶을 버텨내는 사람들.

그들을 보며 우리도 잘 살아가길 소망해본다. 제대로 사는 놈 제대로 못사는 놈 비교할 것 없이 그냥 살자 라고 말하고 싶다. 일단 살아보면 또 못 살 것도 없는 세상이니까.


고린내 안나는 사람 어디있으랴

어릴적 학교를 마치고 유천동 골목을 지나다보면 해가 환한 오후인데도, 히빠리 언니들처럼 붉은립스틱에 한껏 치장한 이모들이 빨간 조명아래 방석을 깔고 요염한 자세로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초점없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초등학생 아이의 눈에는 무섭고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방석집 이모들. 이모들이 나에게 무슨말을 건내는 것도 아닌데, 그 자리를 피하기위해 괜시리 뛰어가곤 했었다. 


재개발이 되면서 지금은 다 허물고 없어져버렸지만, 기억 저편에 자리잡고 있던 기억들이  연극을 보면서 떠올랐다. 성인이 된 지금 연극 <고린내>를 보면서 생각한다. 현재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 고린내 안나는 사람이 있을까하고 말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이면에 감춰진 추악하고 더러운 면들을 덮고 사는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과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말이다. 


일반적인 주제가 아님에도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와 짜임새 있는 연출로 자연스럽게 몰입하여 극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지 않았나싶다. 특별한 극적인 장치가 있지 않아도 물흐르듯이 흘러갔고, 막을 지나면서 흐르는 음향도 극과 잘 어울어지지 않았나 싶다. 나도 모르게 중얼중얼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많은 분들의 고민의 흔적들이 느껴지는 공연이였다. 


웃다가 울다가 마음 속에 잔잔한 파동을 느끼게해 준 배우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연극 <고린내>는 11월 30일까지 공연이 진행된다. 남은 기간동안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관람하면 좋을 연극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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