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배우의 작업실

일반적으로 연기라 하면 남에게 보여주는 행위를 이야기한다. 또 연기를 잘한다고 할 때 보통 자연스럽게 아무 무리 없이 연기를 할 때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면 이 자연스럽게 아무 무리 없이 연기를 하는 것이 왜 어렵고 그것에 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연기자나 연출자들이 완벽히 도달하지 못한 채 고민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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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무대라는 특수한 공간 때문이다. 무대에는, 일반적으로 프로 무대에서 이야기하는 `제 4의 벽` 즉, 관객과 배우가 구분되어지는 무대 전면의 가상의 벽이 배우가 연기하는 데 많은 장애가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의 감정이 아닌 타인의 특수한 감정을 연기해 내고 내면에서 이끌어 내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며, 일상생활에서 하는 것처럼 똑같이 느껴내기도 힘들다. 또 그렇게 자연스러운 연기를 해냈더라도 그것을 생명력 있게 승화시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러한 감각이나 정서를 토막토막 훈련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오감의 기억과 정서적 기억이다.

 

오감의 기억

1) 오감의 기억(감각 기억)이란


오감의 기억(신체 감각의 환기라고도 한다)은 정서 기억보다 쉬울 경우가 많다. 배우는 직업적인 측면에서 몸을 도구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먼저 자기 신체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을 고도로 연마해서 언제든지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도록 정확하게 훈련해야 한다.

 

「오감의 기억」이란 말 그대로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의 5개의 감각을 가리킨다. 오감의 기억을 사용해서 배우는 사물의 느낌을 오감과 연결시켜 체득할 수 있다. 그래서 배우는 오감의 기억을 할 수 있는 도구인 신체를 먼저 연구해야 한다.

자기 인식이 우선인 것이다. 연기자는 신체, 감성, 정서, 지성을 통하여 연기를 창조하는데 그 중의 하나인 신체를 탐구함으로서 좋은 연기의 뒷받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체 감각 연습은 매일 조금씩 해야 한다. 이러한 오감의 기억은 하루 아침에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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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감의 훈련


오감 훈련은 매일 조금씩 해야 한다. 또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눈, 코, 입 모두 다 멀쩡한데 구태여 그것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시되어 버리면 이내 자의식 속에 기억되어 당연히 그 감각이 죽어 버린다.

 

예를 들어 뜨거운 물을 마시는 경우 후후 하고 부는 행위도 뜨거움을 느껴서 식히기 위해 하는 행위이지만 우리는 수 년간 수 없이 많이 뜨거운 물을 마셔 왔기 때문에 그것을 버릇처럼 자동적으로 행하게 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때문에 배우는 항상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듣고, 느껴야 한다. 이러한 훈련을 할 때, 처음에는 의식적인 훈련을 계속해서 이를 연기 중에 적용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극도로 발달된 오감으로 무의식적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또다른 예를 들어보자. 치통으로 인해 아플 경우, 처음에는 자신이 집중해서 이가 아프다는 걸 느끼려고 애를 쓰든지 아니면 자기가 이가 아팠던 때를 계속 상기해서 발전시켜야 한다. 단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이가 아픈 시늉만 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전자의 경우, 제 3자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못 느끼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자꾸 상상력과 과거의 감각을 상황에 적용하고 느끼려 한다면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보는 사람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오버한다는 것도 그저 흉내만 내는 모습이기에 관객과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연습은 대상(치통 혹은 커피 마시기와 같은)에 집중을 해야 효과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3) 오감의 효용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오감을 훈련시켜서 우리는 연기를 좀 더 생명력 있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아주 친한 친구랑 원수지간의 연기를 해내야 된다면 잘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친구 몸에 내가 싫어하는 냄새를 나게 함으로써 원수지간의 연기를 해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 보면 오감의 훈련도 상상력의 요소가 다분히 있다. 아무리 발달된 오감일지라도 상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대로 보여질 수 없는 것이다. 오감의 기억은 정서적 기억의 기본이 되는 요소이므로 우리는 이를 잘 훈련시켜야 정서적 기억을 연습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정서적 기억 

「정서적 기억」이란, 내가 과거에 겪었던 사건에 대한 심리적 정서적 반응을 환기해서 그것이 나로부터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1) 정서적 기억의 필요성


외적 연기는 그것이 모두 내부로부터 동기화되어 있다면 그것은 형식적이고 냉정하며 평면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위의 치통의 예를 다시 들면 `내가 이가 아프니까 이렇게 찡그려야지` 하고 내부에 동기를 형성해 버리면 평면적인 시늉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적 경험이 우선 선행되어야 그것이 외적 형식으로 구체화되고 올바른 연기가 되는 것이다. 연습의 외적인 면만 복습하고 묘사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연기는 무의미하다.

 

그것은 산 장면을 재창조하는 대신에 성공적인 연습만을 되풀이한 것 뿐이다. 이러한 배우의 유혹 중에서 가장 무서운 완성의 외적 형식을 배제하기 위해 우리는 정서적 기억을 필요로 한다. 과거에 경험한 감정을 되살리는 것이다.

 

이렇게 과거에 경험했던 여러 감정을 기억해 내어 이것을 무대위에 투영시킬 때 배우는 비로소 휼륭한 연기를 창출해 낼 수 있다. 그래야 배우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 역을 맡은 자가 예전의 여자 친구와의 실연을 토대로 그 감정을 훌륭히 기억하여 그 역의 상황에 알맞게 투영시키면 그것이 훌륭한 연기를 창출하는 것이다. 


배우가 무대에서 자기 자신을 잃는 순간은 진실로 자기의 역을 생활하기를 포기하고 과장된 거짓 연기를 시작할 때이다. 어떤 역을 연기하더라도 자기의 감정으로 연기해야만 자신이 표현하는 인간을 살릴 수 있다. 

 

여기서 말한 이 자기 감정을 발달시켜 주는 것이 정서적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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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서적 기억과 배우의 자세


인스퍼레이션(영감)이라는 것이 있다. 공연 기간중 아주 하찮은 계기로부터 진짜 감정이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생겨날 때가 가끔씩 있다. 그러면 연기자는 마음이 홀가분하게 되어 자기가 진실성 있게 역을 창조했다고 느끼게 된다.

 

이러한 경우 인스퍼레이션의 순간이 일어났기 때문에 배우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연기자의 상상력과 연기자의 내적 감정이 연극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의 증명이다. 하지만 배우들은, 다음날 다시 이 유성처럼 번뜩이다 사라진 정서를 다시 잡으려 하면 잘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냐하면 대개 배우는 어떤 역에서 우연한 성공을 거두게 되면 그것을 되풀이하고자 서슴지 않고 감정을 자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내면 형식보다는 외적 형식에 치우치게 되어 그가 느꼈던 우연한 성공의 순간은 다시 맛볼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경우 배우는 그 감정 자체를 생각하지 말고 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이며 경험을 초래한 조건은 어떤 것인가 연구하는 데 머리를 써야 한다.

 

다시말해 내적인 창조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배우의 정서적 기억이란 내적 창조를 위한 진정한 재료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정서적 재료를 끌어당기는 수단을 발견함으로써 이러한 우연한 성공의 빈도를 늘려나가야 한다. 또 배우의 정서적 기억이 넓으면 넓을수록 배우의 내적 창조의 재료는 풍부해 진다.


3) 정서적 기억의 근본 원리


의식적인 수단을 매개로 해서 잠재의식에 도달한다. 그것으로 부터 끄집어내는 되풀이 감정을 소중히 해서 위에서 말한 영감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것이 좀 더 발전되면 자기 내부의 가장 좋은 것을 골라 그것을 무대로 가져온다.  


4) 강한 정서적 기억과 약한 정서적 기억


이론적으로 이상적인 타입의 정서적 기억이란 것이 처음의 인상이 정확히 그리고 디테일 그대로를 고스란히 보전하고 재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경험한 그대로를 부활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의 신경 조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처음의 공포가 준 realistic한 모든 디테일이 그대로 되풀이된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다행히 인간은 그렇지 않다.우리들의 정서적 기억이라는 것은 현실의 정확한 모사가 아니며 이것을 강한 정서적 기억이라 할 수 없다.

 

다음 예를 들어보자.


어떤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에게는 똑같이, 풍랑을 만난 배에서 겨우 살아남은 경험이 있었다. 둘 다 그 배에 있었다. 그래서 A, B 두 사람에게 정서적 기억을 행하게 했다. A는 아주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배에 타기 전, 배에 탄 후, 풍랑을 당하고 살아남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생생히 기억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B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때의 기분과 감정들은 느끼고 있었다. 자세한 사건의 과정은 아니지만 초조, 불안, 공포, 극도의 공포, 안도에 이르는 그의 심리 상태는 확실히 느껴가고 있었다. 누가 더 강한 정서적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당연히 B일 것이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강한 정서적 기억이란, 사건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분을 자신이 흠뻑 느끼는 것이다.


5) 정 리


정서를 자극하는 중요한 원천은 참된 신체적 행동과 그것에 대한 신뢰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감정에 대해 특수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참된 신체적 행동과 그에 대한 신뢰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무의식적인 감정을 정서적 기억을 통해 끌어내야 한다


정서적 기억 즉, 자신의 내부에서 특정한 목적과 실습을 통해 전체적인 것(자신의 전체적인 정서력)을 명확하게 규정해 놓으면 자그마한 암시만 받아도 자기가 원하는 인물이 될 수 있다. 또 충동받은 모든 정서를 실체화 시키기 위한 육체적 기술만 터득하면 애써 말을 조형화시킬 필요가 없어지고 저절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모든 연기를 실제 경험의 바탕 위에서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서적 기억을 자극해서 확대와 상상력과 신뢰의 작업으로 일구어 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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