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배우의 작업실

내가 틀렸으면 그냥 틀린대로 살면 안돼?

너는 니 인생만 결정해. 왜 내 인생도 결정해?

코로나19의 여파로 대부분의 공연들이 취소되었지만, 오랜만에 2020 극단손수 정기공연 <안나K>를 관람하고 왔습니다. 공연장에는 아직 많은 관객들이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배우들의 열연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극 중 안나 역시 남성 세계의 폭력과 자신의 나약함으로 인하여 '약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상당히 왜곡되어 있기는 하지만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그 강자들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선한 마음을 가진 청년을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진짜로 삶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제안 받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주저합니다. 지금까지의 고통스러운 삶을 끝낼 수 있는 '옳은' 길이 눈앞에 놓여있는데도 그녀는 선뜻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지 못합니다.


아무리 '옳은' 것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또 다른 억압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정의가, 심지어 세상사람 모두가 맞다고 하는, 논리적으로 100% 옳은 것으로 판명이 난 정의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억압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옳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인간에게는 오래 전 현자들이 '결함'이라고 불렀던, 불가사의한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저는 '옳은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자아'라고 부르겠습니다.


'옳은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자아' 이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말 하고 싶습니다.


줄거리

방 두 개의 20평 정도의 낡은 안나 집.


집에는 식탁이며, 소파며 집안 곳곳에는 잡동사니와 쓰레기들이 가득하다.


이런 안나의 집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 택배다. 안나는 택배를 문 앞에 두고 가라 말하지만, 택배 기사인 재원은 사인을 받기 전에는 물건을 줄 수 없다며 사인을 요구한다. 이때 상구(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나는 빠르게 사인을 하고 서류를 넘겨준다. 그리고 상자를 낚아채려는데... 재원이 순간 안나의 팔뚝에 나 있는 멍을 발견한다. 재원은 그 상처에 대하여 궁금증을 가지지만, 안나는 상자를 빼앗고 재원을 돌려보낸다. 잠시 후 방에서 나온 상구는 안나에게 폭언과, 폭력을 퍼붓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며칠 뒤, 다시 울리는 초인종 소리. 재원이다. 재원은 안나에게 택배 상자를 건네준다. 안나는 택배 상자를 열어본 후, 놀란 표정이다. 상자 안에는 도움을 주겠다는 내용의 쪽지가 담겨있다. 쪽지를 확인한 안나의 알 수 없는 표정, 다시 들려오는 상구의 목소리, 안나는 놀라 재원을 돌려보내지만, 재원은 상구가 없는 시간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며 떠난다.


처음 본 안나를 도와주려는 재원. 그 도움을 거절하는 안나. 재원은 무슨 이유로 안나를 도와주려 하고 안나는 무슨 이유로 도움을 거절하는 것일까...


연출의 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기를 꿈꾸며 자기만의 방법으로 살아가지만 그 끝이 꼭 행복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오던 안나에게

재원이 나타납니다.

그녀의 삶에 침투해

불행에서 나와 옳은

삶을 선택하게 하려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불행한 삶을 선택한 것인지,

불행한 삶에 적응해 버린 것인지,

안나는 이를 거부합니다.


행복의 기준, 불행한 삶의 기준이 다르다지만

일반사람들과 너무 다른 여자. 안나의 이야기입니다.


그녀가 이 집을 나가지 않는 것은

죄책감이나 두려움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진짜 행복은 따로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삶을 포기한 여자가 아닌,

처절하게 살아내려는 여자로 안나를 봐주길 바랍니다.


연극이 끝난 후_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결함 = '옳은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자아' 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극을 보는내내 많이 불편했습니다. 극 초반에는 자신의 아내를 소유물처럼 신체적 학대와 성적학대를 무자비하게 행하는 상구에게 화가났고, 그것들을 고스란히 견뎌내며 무기력함에 끌려가는 안나가 답답했습니다. 게다가 옳은 선택을 하라며 허락도 없이 안나의 삶에 끼어드는 재원을 이해하기 힘들었죠. 내 상식으로는 알수없는 안나의 태도마저 이해할 수 없는 시간들이 흘러갔습니다.


사회통념적인 기준의 잣대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안나의 이야기. 그리고 행복에 대한 이야기


이해할 수 없는 안나의 모습 속에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행복에 대한 기준은 타인이 정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옳다라는 정해놓은 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강압으로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안나의 삶 속으로 좀 더 들어가 안나에게 묻고 싶습니다. "안나야, 너는 지금 행복하니...?" 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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