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배우의 작업실

커피시장의 변화가 하루가 다르다. “커피 한잔 할래?”라는 말이 인사말이 된 지 오래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동네 어디를 가도 원두커피를 내놓는 카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커피 대중화의 발화점을 따라가 보면 ‘1서 3박’이라는 커피 장인이 등장한다. ‘1서’는 1980년대 고(故) 서정달 선생, ‘3박’은 1990년대 고 박원준 선생과 박상홍, 박이추 선생을 뜻한다. 시대를 풍미했던 이 바리스타들 중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박이추 선생이 유일하다.


박이추 선생은 1988년 혜화동에서 ‘보헤미안’이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열고, 2000년에 강릉으로 터를 옮겼다. 이후 그를 따라와 커피를 배우려는 후배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그 결과 지금 강릉에는 안목해변의 커피 거리를 비롯해 300여 개의 커피 전문점이 자리를 잡았다. 10월이면 커피 축제도 열린다. 한 사람의 바리스타가 강릉을 커피 도시로 탈바꿈시킨 셈이다. 이렇게 그가 가는 길이 곧 커피요, 커피는 곧 그의 인생 그 자체다. 


2018년도 가을, 카페허밍 오너들은 카페탐방을 위해 강릉 카페거리로 향했다. 우리들의 첫번째 행선지는 당연히 박이추 선생의 <보혜미안> 이었다. 익히들어왔던 장인을 직접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설레였었다. 이제는 나이가 지긋하셔서 지금이 아니면 현역에 계신 박이추 선생은 영영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박이추 선생은 보헤미안이라 이름지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보헤미안은 세속적인 행동 규범을 따르지 않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이나 그런 삶의 양식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무언가에 억압되지 않고 끊임없이 생동하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고 할까요. 저 역시 항상 자신을 담금질하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로 카페 이름을 보헤미안이라고 지었습니다. 이는 미래에 대한 도전과 개척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의 가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시장만 너무 비대해졌습니다. 커피의 가치가 ‘의미’가 아닌 ‘돈의 규모’로 평가받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커피가 인생을 함께하는 의미를 지닌 문화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어느 잡지사 박이추 선생의 인터뷰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물질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이 있잖아요. 물질적인 것은 한계가 있으니, 대부분의 사람이 적은 비용으로 일시적인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고 싶어 하죠. 그중 제격인 게 커피고요. 보헤미안을 찾는 손님 중에는 커피를 안 좋아하는 분도 있거든요. 커피 안 마시는 사람이 왜 오겠어요. 뭔가를 채우고 싶은 갈망이 있는 거예요. 어찌 보면 각박한 세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슬프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보면 커피 한 잔이 그 사람의 마음에 행복을 채워줄 수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저는 커피에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즐기는 커피도 좋지만 사무실이나 집에서 직접 추출해 마시면서 커피와 함께하는 문화를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좋은 기구나 기법을 알려드리기보다는 커피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커피를 친구처럼 대할 때 커피 한 잔이 여러분에게 베푸는 행복의 깊이도 진해질 것입니다. 


평생을 커피에 바쳐온 장인의 입을 통해 나온 커피를 대하는 마음가짐. 커피를 내리는 스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커피를 내리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카페 운영을 하면서 나또한 이 공간을 통해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준 경험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하게 남아있다. 내가 내리는 커피 한 잔으로 카페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그 사람의 필요들을 채워 줄 수 있음에 감사하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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