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가 도화지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조명디자이너는 무대나 공간에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그림이 너무 드러나서는 안 된다. 최고의 조명은 관객들이 느끼지 못하는 빛 그리고 관객들이 공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돕는 빛이다. 드러나지 않는다고 있는 듯 없는 듯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품의 주제, 안무, 무대 디자인, 장면들에 완벽하게 녹아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빛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한다. 빛의 진출과 후퇴, 경중감, 빛의 색조와 광원의 성격 등 빛의 특성을 모르고서는 제대로 된 디자인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창조 작업을 하는 조명 디자이너에게는 무대가 화가의 도화지와 같으며, 광원과 색지는 붓과 물감인 셈이다.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조명 디자이너 민경수
사진출처: 예술경영웹진
2011년 더 뮤지컬 어워즈 조명상 수상
해와달 프로덕션 대표
주요작 <대장금> <해어화> <올슉업>
오페라 <아이다> <볼쇼이 아이스 발레> 외 다수
조명 디자이너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내 경우에는 우연이 필연으로 바뀌었다. 공무원 시험을 봤는데 하필 세종문화회관의 조명 기사로 발령이 났다. 일을 하다 보니 빛에 따라 변화하는 모든 것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 무렵에는 조명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마땅한 교재나 선생님이 없었기 때문에 교보문고에서 해외서적 목록을 뒤지고 뒤진 끝에 영문 서적 두 권을 주문해서 독학했다. 그 후 일본 문부성 장학생 시험에 합격해서 연수도 다녀왔다. 늘 조명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그 뒤로는 현장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며 배울 수 있었다.
일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조명이 작품 속에 잘 녹아들어가 관객들이 작품의 메시지를 잘 전달받도록 하는데 얼마나 적절한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것이다. 조명은 분명히 공연 환경의 한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에서 조명만 두드러지는 것은 별로 좋은 조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명이 참 좋았다"라는 말보다 "작품이 참 좋았다"라는 말을 들을 때 더 기쁘다.
작품을 진행하면서 다른 스태프와 의견은 어떻게 조율하는가?
준비 단계에서 각 파트의 디자이너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기는 것은 좋은 작품의 탄생을 위한 좋은 징조이다. 그만큼 작품에 애정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충돌이 생겼을 때는 무조건 상대방을 설득하려 들기보다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공연이 끝나고 객석을 나서는 관객들의 환한 미소를 볼 때가 가장 뿌듯하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쌓인 피로와 노곤함이 단번에 싹 풀린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 사진출처: 매거진캐스트
일을 하며 가장 아쉬운 점은?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도 국내 스태프들에게는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 짧게 주어진다. 예를 들면 리허설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공연의 모든 파트가 사전 준비를 끝내고 공연장에 셋업을 한 뒤 충분한 기술 리허설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이 무척 중요한데, 국내에서는 정말 최소한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늘 안타깝다.
조명 디자인의 80%는 제작회의와 연습실의 최종 연습을 보고 이루어지며, 나머지 20%는 공연장에서 리허설을 통해 완성된다 그런데 이 20%가 무대 세트, 의상, 배우를 직접 보면서 영감을 받아 진행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조명 디자인은 리허설 1주일 동안 가장 많이 변화하고 발전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조명 디자인은 공연의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듯한 리허설 시간이 늘 아쉽기만 하다.
이 분야의 일을 하려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짧은 시간에 이루려 하지 말고 언제나 준비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돌아보며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을 해야한다 특정 분야를 파고들기보다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을 섭렵하면서 자기 자신을 계발할 필요가 있다. 될 수 있으면 그림, 건축, 조각, 자연환경, 심지어 심리학까지 두루 섭렵하는 잡식성 취미를 갖는 것이 좋다고 본다.
조명 디자인은 때로는 좁은 공간을 넓은 공간으로 확장하거나 넓은 공간을 좁은 공간으로 압축해야 한다. 색을 만드는 감각과 감성, 생각을 여는 훈련이 필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낚시를 즐기는 편이다 . 시간에 따른 자연환경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하루에도 10번씨기 하늘을 쳐다본다. 같은 하늘이지만 시간대에 따라 색깔과 밝기의 차이가 변화무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