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배우의 작업실

함세덕(咸世德)이 지은 근대 희곡. 1941년 4월 월간 ≪인문평론≫에 발표되었다.

 

함세덕(咸世德), 1915년~1950년

 

함세덕은 유치진(柳致眞)의 제자로서 1935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1950년 6·25 전쟁 중 사망할 때까지 15년 동안 극작활동을 하였다. 1935년부터 1950년까지는 역사적으로 광복·분단·전쟁 등으로 이어진 현대사의 격동기였다.

따라서 함세덕은 몇 번의 작품변모를 보였으며, 이 작품은 그의 순수하였던 초기작품에 속한다. 그의 초기작품은 대부분의 민족항일기 작가들처럼 리얼리즘에 바탕을 두고 처절한 현실을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그는 답답한 현실을 부정적 시각으로 묘사하면서도 사랑을 가미시킴으로써 사실과 낭만을 조화시킨 극작가이다.

 

 

무의도 기행(舞衣島紀行) 줄거리 및 해설

무의도 기행은 강화도의 가난한 어촌을 무대로 하여 어부들의 빈곤한 삶의 실상을 한 소학교 교원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스케치한 해양극의 일종이다. 작품 제목처럼 기행문 형식이다. 극 중 주인공(천명·天命)이 보통학교를 다닐 때의 담임선생이 떼무리에 찾아갔다가 제자의 죽음을 알고 그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담임선생을 함세덕으로 생각하고 읽을 수도 있다. 그는 실제 떼무리를 찾아가 어민들을 곁에서 지켜봤을 것이다.

 

'무의도 기행'은 '도민(島民)들이 가장 기피하는 황량한 겨울이 접어들려는 시월 상순'에 '서해안에 면한 무의도(떼무리라고 부른다)라는 조그만 섬'에서 시작된다. '이번에 수원 가는 철로가 생겼다'는 말로 미뤄보면 수인선 개통 시기인 1937년으로 추정된다.

섬사람들은 1년 중 겨울에 막 접어드는 10월 이 무렵을 싫어했다. '성해가 끼믄 민어낚시 하든 것두 못 해 먹게' 되고 '한겨울 굶구 들어 앉었을'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배경은 소무의도(떼무리)다.

지금도 영종·용유 사람들은 이곳을 떼무리라고 부른다. 떼무리와 큰떼무리(무의도) 사이를 나룻배가 오갔는데, 2012년도에 두 섬을 잇는 연도교가 완공됐다.

 

연극 무의도 기행 출처: 경인일보

 

등장인물로 주인공 천명(天命)과 그의 부모인 낙경, 공씨, 천명의 외삼촌으로 선주인 공주학 등이 나온다. 강원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여의치 않아 강화도로 옮겨와서 바다에 삶의 터전을 둔 주인공 공씨(孔氏)는 두 아들을 바다에서 잃었다.

따라서 셋째아들은셋째 아들은 출어(出漁)를 기피하게 되고, 생존을 위하여 출어를 희망하는 부모와 충돌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셋째 아들은 어부로서 보다는 뭍에서 기술자로 입신하기를 갈망한다.

거기에다가 셋째아들을 사위로 맞으려는 제삼자까지 끼어들어 일이 더욱 복잡하게 얽힌다. 그러나 결국 셋째 아들은 부모의 강권에 못 이겨 다시 바다로 나가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상의 간단한 줄거리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일제의 잔악한 착취로 인해서 바닥이 난 농어민의 참담한 삶을 진실되게 묘사한 작품이다. 다만 유치진의 작품 분위기와 다른 점은 싱그(Synge, J.M.)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서정성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라 하겠다.

 

 

 

무의도기행.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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